경기용인여행. 조광조를 배향한 사액서원, 심곡서원. 용인문화유산. 용인가볼만한곳. 서울근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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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와 서원은 지방 교육기관으로, 선현을 배향하는공간으로 세워졌다. 향교는 국가 주도하여 유교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초기부터 세워졌지만 서원은 사림(학자)에 의해 조선중기이후에 세워지기 시작한 사립교육기관이다. 최초의 서원인 백운둥서원은 16세기 중엽에 세워졌고 17세기에는 많은 서원들이 세워져 조선시대 향촌의 중심시설이 되었다. 하지만 본래의 교육의 기능도 성격이 변모되어 가문의 결속과 붕당의 근거지가 되어, 국가 사회적 폐단이 되었다. 그러자 고종 5년(
1868)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47개의 서원을 제외한 전국의 거의 모든 서원에 철폐령이 내려져 훼철을 하게 된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의 서원중에 조광조 선생을 배향한 심곡서원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과 가까운 용인 수지구에 자리잡은 심곡서원으로 향했다.
심곡서원 [사적] 심곡서원은 조선 중기 중종 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조광조(1482~
1519) 선생 의 뜻을 기리고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 중종때 사림파의 대표로 활약하면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다하였다. 효종 원년(
1650)에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설립하였으며, 효종은 '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하여 심곡서원은 사액서원 이 되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 서당 중의 하나로서,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심곡서원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강당-내삼문-사우(사당)가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행사를 치르고 유림들이 모여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다. 강당 안에는 숙종의 어제어필이 담긴 현판과 서원의 규약 등이 걸려 있다. 사당에는 조광조 와 학포 양팽손의 위패 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에 행사를 올리고 있다. 심곡서원은 최초 사당을 중심을 제향기능을 강조하여 지어졌으며, 이후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뒤편에 제사를 두는 전당후재 의 모습을 보였고, 심곡서원도가 그려진 시기에 앞서서 전재후당의 공간구성 을 보이고 있음을 옛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조광조 선생의 묘소는 심곡서원 맞은편 좌측 앞산에 있으며, 심곡서원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에서 201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기묘사화 ; 1519년에 조광조와 사림파 인사들이 대거 숙청된 사건 *양팽손 : 문신, 조광조를 위해 여러 차례 상소를 하였음 [문화유산 안내문]
1. 사우 2. 내삼문 3. 장서각 4.치사제 5. 강당 6. 협문 7. 동(거인)재 8. 서(유의)재
9. 외삼문 10. 일각문 11.일각문 12. 홍살문
서원에 가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서원의 대문이라 가능한 홍살문이다. 홍살문의 모양을 보면 붉은 색의 기둥 두개와 그 사이에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고 중간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은 형태이다. 문은 문인데 문짝이 없는 우리나라 전통 대문이라 할 수 있다. 왕릉이나 선현의 위폐를 모시는 향교나 서원 등 신성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문화유산에서 볼 수 있으며 효자, 열녀, 충신등이 나온 집 앞에 표창을 내리는 뜻으로 세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홍살문 넘어로 외삼문이 보인다.
강당은 학문 토론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학 공간으로, 우암 송시열이 쓴 [용인현심곡서원강당기](1676년)에는 1661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각 칸의 문마다 판자문비를 달아 사방을 모두 열어 개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당의 현판은 1785년(정조
9)10월에 만들었으며, 정조대의 문신 문춘공 김종수의 낙관이 찍혀있다. 강당은 해방 이후인 1957년에 중수되어 문정중학교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의 강당은 1974년 복원되어 보존되고 있다. [안내문]
동재와 서재
장서각은 서원의 책과 문서를보관된 곳으로, 본래 이곳에 67종 486책과 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ㅗ전해지나, 1950년, 1987년, 1993년에 걸쳐 대부분 도난된 것을 알려졌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탄, 지붕은 맞배지둥이다. 증언에 따르면 장서각의 건물은 1920년에 지어졌고, 1981년 중수된 것으로 확인되며 1984년에 현판이 걸리게 되면서 '장서각'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문]
장서각에는 혜강공 양팽손과 조광조의 영정이 걸려 있다.
사우는 조광조 선생과 양팽손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가 이루어지는 제향공간이다. 2010년 사우를 보수할 당시 중도리(서까래를 걸기 전 마지막으로 올리는 마룻도리)에서 1636년과 1933년에 작성된 심곡서원 중건 상량문이 확인되어 건물의 중건 시점을 알 수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3년에 지어진 것이 보존되어 온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사우의 외곽으로 담장이 구획되어 있고, 출입시설인 내삼문이 서쪽 방면에 마련되었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 대문보다 한 단 높게 세운 솟을삼문으로 되어 있다. 내삼문은 들어가는 방향의 오른쪽, 나오는 방향의 오른쪽으로 출입한다.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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